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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수 남진 '영원한 오빠'로 살아가는 오빠남진 영화
    카테고리 없음 2024. 9. 3. 00:46

    2020년에 발표된 노래 "오빠 아직 살아있다"에서 가수 남진은 "나 아직 살아있어"라는 가사로 그의 활기찬 에너지를 다시 한 번 증명했다. 올해 78세를 맞이한 남진은 나이와는 무관하게 여전히 젊고 활기찬 모습으로 팬들을 만나고 있다. 1970년대를 풍미하며 '원조 오빠 부대'를 이끌었던 그가 현역으로서 여전히 무대에 서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경이롭다. 다큐멘터리 영화 오빠, 남진의 개봉을 앞두고, 그는 자신의 데뷔 60주년을 맞이한 소회와 더불어 인생의 여러 굴곡을 돌아보았다.

    금수저로 태어난 슈퍼스타, 인생의 파도를 넘다

    남진은 1945년, 해방둥이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전라남도 목포에서 성공한 사업가이자 언론사 대표,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고(故) 김문옥 씨였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남진은 어린 시절부터 연극과 음악에 심취했다. 그가 가수의 길을 걷게 된 것은 부모님의 기대와는 다른 선택이었다. 1965년, 그는 가수로 데뷔하며 그 길에 들어섰고, 이후 "가슴 아프게" (1967), "마음이 고와야지" (1967), "미워도 다시 한 번" (1968), "님과 함께" (1972), "빈잔" (1982), 그리고 장윤정과 함께 부른 "당신이 좋아" (2009) 등 수많은 히트곡을 탄생시켰다.

    남진은 한때 5만 명의 팬을 거느린 슈퍼스타였다. 그러나 유신 정권과 신군부 등 정치적 변화로 인해 그의 가수 인생은 여러 번의 굴곡을 겪었다. 또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해 목숨을 잃을 뻔한 경험까지 겹치며 그의 인생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그러나 그가 가지고 있던 특유의 잘생긴 외모와 카리스마 덕분에 1967년부터 약 10년간 70여 편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으며 영화배우로서도 활약할 수 있었다.

    다큐멘터리 오빠, 남진은 남진이 금수저 집안의 차남으로 태어나 가수로서의 길을 걷게 된 인생 이야기를 담았다. 이 다큐멘터리에는 그의 대표적인 공연 영상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했던 연예인들, 그리고 후배 가수들의 인터뷰도 포함되어 있다. 이를 통해 남진의 다채로운 인생을 엿볼 수 있다.

    남진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고(故) 김대중 대통령이 집에 드나들 정도로 우리 집안은 잘살았다"고 밝혔다. 그는 1950년대 포드 자동차를 타고 등교할 정도로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다. 하지만 남진은 "공부를 하면 머리가 아팠다"며, 연극과 음악에만 몰두했던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특히 팝송 애호가였던 남진은 전성기 시절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로 불리기도 했다. 그가 처음으로 발표한 데뷔곡 "서울 플레이보이" (1965)는 팝송 스타일의 곡이었으나,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이후 그는 유신 정부 시절 "연애 O번지"라는 곡이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금지곡으로 지정되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에 남진은 어머니의 권유로 "울려고 내가 왔나"라는 트로트를 부르게 되었고, 이 곡으로 스타덤에 오르게 되었다. 시대와 맞아떨어진 노래가 뜨는 것을 경험하면서 남진은 인생의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베트남 전쟁 참전과 컴백, 그리고 라이벌전

    남진은 전성기 시절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며 가수로서의 활동에 잠시 공백을 가졌다. 그러나 전쟁에서 돌아온 후 그의 컴백은 더 큰 환호를 받았다. 당시 남진과 나훈아의 라이벌전은 그 열기로 인해 나훈아 피습 사건 당시 "남진이 배후"라는 루머가 돌 정도로 뜨거웠다.

    남진은 여러 차례 인생의 고비를 겪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1982년이었다고 회상한다. 그 당시 전라도 출신이라는 이유로 활동이 어려웠던 사회적 분위기와 함께, 조용필의 등장으로 음악 시장이 변하면서 그는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남진은 처가가 있는 미국으로 가서 3년을 보내고 돌아왔다. 그는 이 시기를 두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었으며, 나이 35세가 넘으니까 삶이 움츠려들었다"고 고백했다. 이때 그는 우울증을 겪으며 인기가 사라지는 것을 경험했고, 이로 인해 또 한 번 인생을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은퇴? "노래가 되는 한 계속할 것"

    영화 오빠, 남진의 마지막 장면에서 "마지막 무대는 언제가 될까"라는 물음에 남진은 "글쎄, 잘 모르겠는데. 근데 오늘은 아니야"라고 답했다. 그는 여전히 노래에 대한 열정을 간직하고 있으며, 오는 7일에 열릴 예정인 2024 남진 콘서트 '음악중심'을 앞두고 있다. 남진은 요즘도 매일 밤 "깊은 감성을 달라"며 기도한다고 한다.

    남진은 "가슴 아프게"나 "님과 함께"를 들었던 팬들이 이제는 70대, 80대가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그 노래들을 더 뜨겁고 깊게 부르고 싶다고 말했다. 젊었을 때는 음악을 좋아했지만 바쁜 일정으로 인해 마음의 절반쯤만 음악에 담겼다면, 이제는 노랫말 하나하나에 온몸을 다 담그고 싶다는 것이다.

    그의 인생 곡으로는 "빈잔"과 "둥지"를 꼽았다. "빈잔"은 그가 미국에서 돌아온 후 자신감이 바닥일 때 만난 곡으로, "인생은 빈 술잔 들고 취하는 것"이라는 가사가 특히나 그에게 와닿았다고 한다. 이 곡은 별다른 홍보 없이도 많은 사랑을 받은 유일한 곡이다.

    1999년에 발표된 "둥지"는 35주년 기념 앨범 발매 일주일 전에 우연히 만난 행운의 곡이다. 남진은 3년 동안 12곡을 준비해 녹음을 마친 상태였는데, 지방 공연 중 사무실에 한 무명 작곡가가 카세트테이프를 두고 간 것을 무심코 들었다가 전율을 느꼈고, 이 곡을 타이틀곡으로 결정했다.

    앞서 나훈아는 지난 2월 은퇴를 공표한 바 있다. 남진은 이에 대해 "노래가 잘되는데 왜 떠나는지 모르겠다"며, "나는 노래가 되는 한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여전히 노래를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이를 위해 건강을 챙기고 있다고 덧붙였다. 남진은 "나는 영원한 오빠라는 수식어가 좋다"며, 90대에도 노래한 토니 베넷 같은 가수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가수 남진, 그의 인생을 담은 다큐멘터리 오빠, 남진

    영화 오빠, 남진은 남진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로, 그가 한국의 음악계에서 걸어온 길을 조명한다. 이 영화는 남진의 대표곡인 "님과 함께", "가슴 아프게", "빈잔", "울려고 내가 왔나", "모르리" 등 총 5곡을 어쿠스틱 버전으로 편곡해 새로운 매력을 선보인다. 이는 오직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무대로, 남진의 팬들이 극장에서 이 영화를 반드시 봐야 할 이유로 꼽힌다.

    이 영화의 제작진은 남진의 인생과 그가 살아온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노래들을 신중히 선정하여 편곡 작업을 진행했다. 영화 속에서 선보인 남진의 어쿠스틱 무대는 그가 평생 동안 화려한 무대에서만 노래해온 것과는 대조적이다. 남진은 촬영 당시 모든 곡들을 단 한 번에 소화해내며 베테랑 가수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영화에는 또한 팬들과 함께한 뜨거운 콘서트 현장도 생생하게 담겨 있다. 광주, 성남, 인천, 서울, 부산 등 다양한 지역에서 열린 그의 콘서트 장면을 촬영해내며, 남진의 팬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과 여전히 폭발적인 인기를 느낄 수 있다.

    남진은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오빠'라는 수식어를 얻은 연예인이자, 지금까지도 레전드로 불리고 있다. 영화 오빠, 남진은 그의 60년 음악 인생을 기념하며, 팬들에게는 오직 그들을 위한 헌정 무비로 자리잡을 것이다.

    남진은 앞으로도 노래가 되는 한, 팬들을 위해 무대에 서겠다는 다짐을 전하며, "영원한 오빠"로서의 자리를 지켜갈 것이다. 그의 노래는 시대를 넘어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으며, 앞으로도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오빠, 남진이라는 다큐멘터리는 그의 인생과 음악을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이며, 팬들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할 것이다.

    오빠 남진 포스터
    오빠 남진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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